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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산에 얽힌 설화와 전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24
조회수
23

전북일보 기사입력: 2021.09.23 17:42


회문산에 얽힌 설화와 전설 


조선 500년 역사에서 회문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때는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회문산을 검색해보면 선조 때 토적들이 험지를 점거하고 도발하여 적의 소굴이 됐다는 기록 정도가 나온다. 험준한 산이어서 민중들의 삶과도 괴리가 있었다. 그래서 회문산은 이 일대 민초들에겐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민중들이 오랫동안 영산으로 여겨온 까닭에 신비스러운 여러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회문산은 오늘날 순창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고추장에 얽힌 설화부터 명당과 종교 관련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명에 얽힌 이야기


‘회문산(回文山)’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부터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문산자연휴양림 역사관에는 홍성문설과 조평설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인물과 관련된 지명 이름이다. 홍성문설은 조선 중기 때 전설적 풍수가인 홍성문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다. 조평(1569~1647)설은 고향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지원하고 많은 덕을 베풀었던 조선 중기 문신인 조평이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서 회문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다.


<회문산가>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홍성문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의 생몰연대에 대해 조선 중종 때인 혹은 영조 때 인물로 전해진다.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텃골에서 홍진사와 마을 주막집 주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그는 홍진사가 죽은 후 어린 나이에 회문산 만일사로 들어갔다. 회문산 자락 사자암 등에서 27년 도를 닦아 풍수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는 팔도를 답산한 후 회문산에 많은 명당이 있음을 알고 세상에 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명당에 욕심만 있지 그것을 감당할 덕을 갖춘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그는 양반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명당 장사로 양반을 희롱했다고도 한다. <회문산가>를 통해 회문산에 오선위기혈의 큰 명당이 있다고 해 지금도 많은 풍수가들이 이를 좇고 있다.


회문산 이름과 관련해 또 다른 해석도 있다. ‘回文’이란 앞으로, 뒤로, 이리저리 돌려 읽어도 동일한 내용의 문장을 뜻하는데, 회문산은 투구봉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바라보아도 서로 같은 모습의 형태적 측면에서 이름 붙였을 것으로 추정했다.(김성암 도선-풍수비기 연구원)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회문산 주변을 물이 감아서 흐르기 때문에 ‘回’를 붙였고, 삼각형 모양의 투구봉은 문필봉과 같이 쓰일 수 있어 투구봉을 문필봉으로 보면 회문산이라는 이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무학대사와 만일사


고추장과 얽힌 설화로 유명한 만일사와 장독대


회문산 고찰인 만일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고추장에 얽힌 설화가 담긴 절로 유명하다. 백제시대 건립된 천년고찰의 이 절은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왕위등극을 위해 절을 중건하고 만일동안 기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27년이나 되는 1만일을 기도했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것만큼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용헌 교수는 추정했다.


조 교수는 전북에서 이성계와 관련된 기도처로 만일사 외에 임실 성수산 상이암과 진안 마이산 은수사 등 3곳이나 사찰이 있는데, 이성계의 남원 왜구토벌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성계는 왜구토벌의 와중에서 전북의 지세를 자세히 파악했을 것이고, 어느 사찰이 영험한가도 알았을 것이란다. 만일사 존재를 이성계가 이때 파악한 것 같고, 무학대사가 만일사에서 기도를 하게 된 배경으로 해석했다.


전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만일사비가 그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3조각으로 부서진 것을 1978년 복원해서 건립한 비는 마멸이 심해 비문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2003년 예원대 전북역사문화연구소가 실시한 탁본 및 연구조사에 의하면 정유재란때 소실됐던 만일사를 지홍대사와 원측대사가 1658년에 중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한국전쟁 때 빨치산 소탕에 나섰던 국군에 의해 소실된 후 1954년 재건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화와 상관없이 만일사는 곧 회문산의 증언자인 셈이다.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인 만일사 경내는 현재 대웅전, 삼성각, 무설당, 일주문, 비각, 종각, 요사채,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성계와 순창고추장


순창 고추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로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이성계가 만일사에서 기도중인 스승 무학대사를 찾아 회문산으로 가던 중 점심때가 돼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과 함께 차려진 점심 먹게 됐다. 그 고추장 맛에 반했던 이성계는 왕으로 등극한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순창현감에게 고추장을 진상토록 하면서 순창 고추장이 유명해졌다는 설화다.


그러나 조선조 이전 간장과 된장 관련 기록은 있지만(<삼국사기>) 고추장에 대한 기록이 없어 일각에서 설화의 진정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고추장 관련 문헌 기록은 이수광이 1614년에 편찬한 <지봉유설>에“고추에는 독이 있다. 일본에서 비로소 건너온 것이기에 왜겨자라 한다”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한다.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과 일본 양쪽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높다. 고추 대신 ‘당초’라는 이름의 문헌(1766년 <증보산림경제>)이 있어 임진왜란때 구원군으로 들어온 명군에 의해 동시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학계에서 거론된다.


설화는 설화다. 설화를 사실적으로 규명하거나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순창고추장이 유명하기 때문에 설화가 생겼을 게다. 실제 조선시대 순창고추장 명성이 자자했던 사실은 문헌으로 나타나 있다. 1800년대 초 생활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 순창과 천안, 함양 고추장을 팔도 명물로 소개했으며, 그 중 순창 고추장을 최고로 쳤다.


설화부터 현재까지



고추장 익는마을 간판


오늘날 순창은 고추장으로 특화됐다. 고추장 설화를 상기시키는 ‘고추장 익는 마을’이 회문산 아래 위치해 있고, ‘고추장민속마을’은 순창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고추장이 순창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할 정도다. 고추장 익는 마을은 각종 항아리들이 해학적으로 쌓여 있다. 숙박시설과 식당, 강당, 세미나실, 캠프파이어 등 여가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농사체험을 할 수 있다.


20여년 전 순창읍 백산리 일대 조성된 고추장민속마을은 장류연구소·장류박물관·장류체험관·옹기체험관·발효미생물진흥원·전통발효식품(장류)전용공장·전통절임류세계화지원센터 등의 지원시설을 갖췄다. 매년 장류축제를 통해 순창고추장을 전국에 알리고, 순창세계발효소스 박람회를 통해 순창 장류의 세계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전통발효문화산업 투자선도지구도 새로 조성했다. 이곳에 참살이발효마을(발효테라피센터, 누룩체험관, 고추·다년생식물원, 세계발효마을농장, 추억의 식품거리), 월드푸드사이언스관, 발효미생물전시관, 어린이실내놀이터, 고추장상설문화마당이 들어서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렇게 지역의 허브산업이 된 데는 순창 고추장만의 독특한 맛과 풍미가 있기 때문이다.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그 비결이 발효식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물과 기후 등에서 찾는다. 똑같은 재료를 같은 방법으로 고추장을 담가 다른 지역에서 숙성 시키더라도 순창고추장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건 기후 때문으로 분석한다. 은은하고 감미로우며 검붉은 순창만의 독특한 고추장 만드는데 순창지역 기후 영향이 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 설화에서부터 순창고추장의 유명세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김원용 기자


출처: 전북일보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11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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